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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소식

[과학향기] 물 부족 문제, 맹그로브·딱정벌레에서 답을 찾다!

<KISTI의 과학향기> 제2880호

 

 

 

‘잡초라도 배울 점이 있다’라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뭔가를 배울만한 장점이 있다는 의미다.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탄생했다. 청색기술이란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한 생명체의 효율성을 모방하거나, 이들로부터 영감을 얻자는 취지로 개발된 기술이다. 과학자들은 조만간 인류에게 닥칠 물 부족 문제의 해답을 생명체에서 찾고 있다. 
 
■ 맹그로브 뿌리의 메커니즘을 모방한 해수담수화 기술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으로 과학자들은 ‘해수담수화’ 기술을 꼽는다.
해수담수화 기술이란 바닷물에서 염분을 인위적으로 제거한 뒤 이를 담수(淡水)로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염분을 제거하는 방법으로는 주로 ‘증발 방식’이나 ‘역삼투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방식 모두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단점이 있다. 담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비용이 올라가게 되므로 기술의 상용화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포항공대 연구진이 에너지 소모량이 적으면서도 효율은 기존 기술에 뒤지지 않는 신개념의 해수담수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신기술은 해안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인 맹그로브(mangrove) 뿌리의 메커니즘을 모방한 자연모사형 해수담수화 기술이다. 맹그로브의 뿌리는 나트륨 이온을 여과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바닷물에 포함된 염분의 약 90%를 걸러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맹그로브의 뿌리는 나트륨 이온을 여과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바닷물에 포함된 염분의 약 90%를 걸러낼 수 있다. (출처: wikimedia)

 

 

염생식물이란 바닷가 주변에서 서식하는 식물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삼투압 현상으로 인해 염분이 존재하는 지역에서 살 수 없지만, 염생식물은 뛰어난 여과 능력을 갖고 있어 염분이 많은 환경에서도 서식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포항공대 연구진은 맹그로브 뿌리를 모방한 필터를 개발했다. 이를 이용해 실험한 결과, 기존 해수담수화 기술과 유사한 96.5%의 염분 제거 성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기웅 연구원에 따르면 맹그로브 뿌리를 모방한 해수담수화 여과막은 제작공정도 간단하다. 또한 작은 규모의 설비로도 구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시설에 비해 저렴하고, 효율적이며, 안정적으로 해수를 담수로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 딱정벌레 등껍데기를 이용한 안개 응축기술
곤충에게서 배운 수분포집 기술도 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에 살고 있는 딱정벌레는 주위에 물이 없어도 살 수 있다.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나 안개로부터 수분을 모아, 이를 섭취하는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게 진화한 덕택이다. 딱정벌레가 수분을 모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차가운 등껍데기에 있다. 차가운 맥주병을 실온에 꺼내 놓았을 때 병 표면에 물방울이 생기는 것과 같이 공기 중에 있던 수분이 딱정벌레의 차가운 등 위에 닿으면 물방울이 맺히게 된다. 
 
캐나다의 비영리 기관인 포그퀘스트(FogQuest)는 이 같은 딱정벌레의 안개 응축기술을 활용해 주위에 호수나 강이 없는 메마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식물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과 비슷한 재질의 그물을 통해 공기 중의 수분을 모으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포집 비용은 거의 들지 않지만 시스템 효율이 좋지 않다는 단점은 있다. 특히 안개가 거의 없는 날에는 이용 가능한 물의 2% 정도만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진. 수분을 포집하기 위해 펼쳐놓은 포그퀘스트의 수직 체눈. (출처:  fogquest.org)

 

 


이에 미 MIT대의 연구진과 칠레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건조 지역에서도 수분 포집량을 늘릴 수 있는 개선된 안개 응축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일단 현재까지 진행된 결과만 놓고 보면 상당히 성공적이다. 구식 시스템보다 효율이 10% 이상 향상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안개 포집 시스템은 고효율의 수직 체눈(mesh)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그물을 이루는 실의 크기와 구멍의 간격, 그리고 실의 코팅 방식에 따라 수분 포집량이 달라진다는 것이 MIT대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렇듯 자연은 위대하다. 다른 행성에 탐사로봇을 보내고, 생명체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자연이 알려준 경이로운 기술이 뒷받침되고 있다.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