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제2999호

 

 8월 초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한 달 만에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 김만섭은 광주에 내려갔다가 통금 시간 전에 돌아오면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 기자 피터를 태우고 길을

나선다.

 
어렵사리 검문을 뚫고 들어선 광주에서 그는 계엄군에게 잔혹하게 학살당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광주는 완전히 고립됐다. 교통은 두절되고 시외전화까지 끊겼다. 하지만 시민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과 학생들에게 먹이고 택시 운전사들은 환자들을 병원에 후송한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났지만 광주 시민들에게 당시의 공포는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편도체 망가진 쥐, 고양이 무서워하지 않아
 
이런 후천적 공포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됐을 때 그 상황이나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며 겪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학생들 가운데 지금도 사고가 난 4월 16일이 돌아올 때마다 기억의 상처가 덧나는 이가 있다.
 
이제 대학생이 된 단원고의 한 생존 학생은 화장실에 있던 친구가 무섭다고 나오지 않았다며 아직도 화장실

 가기를 꺼려한다. 이렇게 우리를 과거의 기억 속에 붙잡아 놓는 후천적 공포는 우리 몸 어디에 저장돼 있는 것일까.

 

 

사진 1. 편도체가 망가진 쥐는 고양이 앞에서 잡혀 먹힐 때까지 장난을 친다. 공포의 감정이 사라져 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출처 : Pixabay
 
공포의 발현과 기억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양쪽 귀의 안쪽 대뇌 부위에 위치한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다. 불의의 사고로 편도체를 손상당한 환자는 감정, 특히 공포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수술을 하기 위해 편도체 부위를 약한 전기로 자극하면 환자는 공포를 느낀다.
 
편도체가 망가진 쥐는 고양이 앞에서 잡혀 먹힐 때까지 장난을 친다. 공포의 감정이 사라져 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죽음과 같은 선천적인 공포를 느낄 때 편도체가 관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편도체에 죽음의 공포가 각인되는 것인지, 대뇌의 다른 소기관에서 각인된 ‘죽음의 메시지’가 편도체를 활성화시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를 확인하려면 죽음의 공포를 재현하거나 측정할 수 있는 실험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 분야에서 큰 공헌을 세운 과학자는 미국 뉴욕대 조셉 르두 교수와 에모리대 마이크 데이비스 교수다. 이들의 가장 큰 연구 성과는

 기억의 저장소라고 알려진 시냅스에 선천적인 공포가 각인되고 평생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와 관련된 기억을 치유할 수 있을까.

 
신경세포 간 연결 약화시켜 기억 지운다
 
기억이란 두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에서 신호전달의 효율이 높고 신경세포 간의 결합이 강화된 상태를 말한다. 기억이 강화되면 신경전달물질을 수용하는 시냅스는 돌기처럼 볼록하게 솟아난다. 처음부터 신경세포가 돌기구조를 갖는 것은 아니고 기억이나 학습으로 시냅스가 활발히 만들어지면서 점차 돌기가 늘어나는 것이다.
 

 

사진 2. 두려움은 생존에 도움을 주지만 과도할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게 할 수도 있다. 출처 : Pixabay
 
만약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원활하지 못하면 시냅스의 연결에 문제가 생겨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언어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공포기억 저장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들을 찾아 그 연결을 약화시킨다면 특정 기억을 없애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 리버사이드) 조준형 교수와 김웅빈 연구원이 실험용 쥐의 공포기억을 저장하는 신경세포 간 연결을 약화시키면 공포기억이 희미해진다는 내용을 국제학술지 ‘뉴런(Neuron)’ 8월 18일 자에 발표했다.
 
사람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사건을 경험할 때 이와 관련된 상황이나 자극에 두려움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뱀을 보면 기겁한다. 먼 옛날 인류의 조상들에게 뱀과 맞닥뜨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뱀을 보면 무조건 도망가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두려움은 생존에 도움을 주지만 과도할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게 할 수도 있다. 연구진은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풀고자 공포기억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들과 저장 경로를 찾기로 했다.
 
먼저 쥐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이 소리를 들려줄 때마다 약한 전기충격을 줬다. 다음 날 이 쥐는 전기충격 없이 소리만 들어도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전날 소리와 전기충격을 함께 받았기 때문에 소리만 듣고도 전기충격을 받은 듯한 공포심을 느낀 것이다.
 
또 이 쥐는 특정 청각 신경세포와 공포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 사이의 연결이 강해져 있었다. 이는 소리를 듣는 신경세포와 공포기억이 저장된 곳 사이에 튼튼한 ‘신호전달 통로’가 놓여졌다는 뜻이다.
 
이후 연구진이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을 이용해 청각 신경세포와 편도체 사이의 연결을 약화시키자

 소리를 들었을 때 쥐의 공포감도 약해졌다. 특정 소리와 연결된 공포기억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공포기억 없애는 연구가 필요한 이유
 
이제까지 공포기억을 지우는 연구는 일반인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켜 왔다. 공포를 일으킨 상황에 대한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는 감정에 대한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당시 느꼈던 공포기억만을 지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준형 교수팀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른 기억을 유지한 채 불필요한 공포기억만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과거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죽음은 그냥 지나간 추억은 아닐 것이다. 또한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는 안 될 것이다. 공포기억을 없애는 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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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979호

 

물에도 맛이 있을까? 이 질문은 고대부터 이어져 왔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0년경 물에는 아무런 맛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물맛’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제 공동 연구진이 쥐의 혀에서 물맛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로 이뤄진 미각수용체를 발견했다. 이로써 혀로 5가지 맛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던 사람의 미각에 여섯 번째 맛으로 물맛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맛 느끼는 신경세포가 ‘물맛’도 느낀다
 
포유류, 특히 사람의 혀는 최대 200가지의 다양한 맛을 구별할 수 있지만 순수하게 혀의 미각수용체만으로 인식하는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5가지 맛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혀로 특정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미각수용체가 해당 맛을 내는 특정 화학물질을 감지해 뇌로 신호를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생명공학과 오카 유키 교수팀은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병원 해부연구소와 공동으로 쥐의 혀에서 물이 닿을 때 감각신호를 생성하는 미각수용체를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5월 29일자에 발표했다. 즉 달거나 짠 음식을 먹을 때처럼 물을 마실 때도 쥐의 혀에서 감각신호가 활성화되면서 뇌로 전달된 것이다.

 

 

 

물맛을 느끼는 미각수용체에 인위적으로 신호를 주자 쥐는 마치 물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출처: Caltech)
 
연구진은 물을 마실 때 쥐의 혀에서 어느 신경세포가 반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단맛, 짠맛처럼 기존에 알려진 5가지 맛을 감지하는 미각수용체를 선택적으로 비활성화시켰다. 분석 결과 산성 물질에 민감한 신맛 미각수용체가 물을 마실 때 격렬한 감각신호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맛을 감지하는 미각수용체가 물맛도 감지하는 것이었다.
 
특히 신맛 미각수용체가 비활성화된 쥐는 무색(無色), 무미(無味)의 실리콘 오일과 물이 주어졌을 때 물을 고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는 신맛을 느끼는 혀의 신경세포가 다른 액체와 물을 구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연구진은 광(光)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물맛을 느끼는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생쥐가 물을 마시게 되는지도 시험했다. 그 결과 쥐는 신맛 미각수용체에서 신호가 발생하도록 만든 청색광에 노출될 때 마치 물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목이 마른 쥐 몇몇은 10분간 2000번이나 청색광 램프를 핥기도 했다. 신맛 미각수용체가 물맛도 감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번 실험에 앞서 비슷한 연구들이 있었다. 양서류와 곤충이 물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미국 듀크대 시드니 사이먼 교수팀은 포유류의 혀에서 물맛을 느끼게 하는 ‘아쿠아포린’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자처리 나이트 교수팀은 인간의 두뇌피질이 물을 마실 때 특이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인간이 맛을 느끼는 혀에서 신경세포가 물 분자와 어떻게 반응해 신호를 생성하고 이를 뇌로 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물맛은 산성도(pH) 변화로 감지할 가능성 높아
 
유키 교수팀에 따르면 물맛은 혀의 산성도(pH) 변화로 감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물이 혀에 묻어 있는 침을 씻어내는 순간 미각수용체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이 산성 점액인 침(타액)을 씻어내 세포의 pH가 중성에 가까워지자 혀에서 물맛을 의미하는 다른 종류의 신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혀로 느끼는 5가지 맛은 모두 화학적 자극에 의해 감지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레몬산처럼 신맛을 내는 산성 물질이 침에 녹아 수소이온(H+)을 내놓으면 혀의 pH가 산성에 가까워지면서 뇌로 감각신호가 전달된다. 이와 함께 짠맛은 무기 또는 유기 알칼리염이 침에 녹으면서 나오는 음이온으로 인식된다. 초콜릿이나 사탕 등에서 느껴지는 단맛은 당류, 알코올류, 아민류 같은 유기화합물로 인해 감각신호가 생성된다.
 
혀가 느끼는 5가지 맛 중 가장 예민하게 느껴지는 쓴맛 역시 알칼로이드, 배당체 같은 화학물질로 감지된다. 2000년에 다섯 번째 맛으로 새롭게 인정받은 감칠맛도 다시마 같은 식재료에 함유된 글루탐산나트륨에 의해 감각신호가 생겨나 뇌에서 맛을 인식한다. 

 

 

 

물맛을 여섯 번째 맛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학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출처: pixabay)
 
그렇다면 다른 맛들은 어떨까? 사람이 느끼는 맛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혀로만 감지하는 5가지 기본 맛과는 구분되는 맛이 있다. 바로 매운맛과 떫은맛이 대표적인 예다. 이 맛들은 입안 점막을 포함한 입 전체에서 감지되는 압력과 온도 변화, 촉감 등 다양한 자극에 의해 맛이 느껴진다. 따라서 혀로만 감지되는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등 5가지 기본 맛과는 구별된다. 매운 떡볶이를 먹었을 땐 입 전체가 얼얼하지만 달콤한 초콜릿을 먹었을 땐 혀에서만 달달함이 느껴진다.
 
한편 물맛을 여섯 번째 맛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짠 음식을 먹은 뒤 유독 물이 달게 느껴지는 것처럼 물맛은 다른 맛을 느낀 직후 사후 효과에 의해 일시적으로 느껴지는 맛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기 때문이다. 
 
현재 물맛 외에도 다양한 맛이 여섯 번째 맛 후보로 제안되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립대 식품공학과 임주연 교수는 2016년 인간의 혀가 순수하게 ‘탄수화물(starchy)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전까지 밥, 빵 등에 포함된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 느껴지는 맛은 탄수화물이 당분으로 분해될 때 인식되는 단맛으로 생각했지만, 단맛 미각수용체를 마비시킨 상태에서도 탄수화물 맛을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미국 퍼듀대 영양학과 리차드 매티스 교수는 2015년 ‘지방 맛’이 여섯 번째 기본 맛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글: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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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975호


컴퓨터과학자이자 SF 작가인 베너 빈지(Vernor Vinge)는 1993년 ‘특이점(singularity)’이란 개념을 처음 내놓았다.



이 개념은 기술의 발전이 점점 빨라져 결국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기계 지능이 탄생할 것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특이점이란 아이디어는 ‘무어의 법칙’에 기초하고 있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제시한 이 법칙은 마이크로칩의 밀도가 2년 내지 18개월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법칙이다. 다시 말해 컴퓨터 처리속도가 일정 시기마다 배가 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는 의미다. 
 
당시 빈지 박사는 기계 지능의 폭발 시점, 즉 특이점이 도래할 시기를 2005년에서 2030년 사이로 예측했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AI)의 특이점이 도래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5월 세계 바둑 1위 커제와 대결을 벌여 3연승을 한 알파고다. 2016년 당시 이세돌 9단과 대국할 때만 해도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로 학습했다. 그러나 커제와의 대국을 앞두고 알파고는 기보에 의지하지 않고 자율학습을 실시했다. 즉 인간의 기보에 없는 바둑의 수까지도 창조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구글 측은 커제와의 바둑 대결을 통해 알파고가 직관과 창의성을 모두 갖췄음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대국의 당사자인 커제 역시 알파고 바둑의 특징 중 하나로 창의력을 꼽으면서 앞으로 알파고를 바둑 스승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림1.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패배한 커제는 알파고의 창의력을 특징으로 꼽으며 알파고를 바둑 스승으로 삼겠다고 전했다.

 
창의력은 지식을 합성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능력을 말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지 못할 것으로 꼽힌 가장 유력한 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창의력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제 창의력도 서서히 갖춰가고 있는 셈이다.
 
인공지능의 또 다른 단점을 꼽자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잘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하게 발생하는 불예측성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입력된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이는 컴퓨터는 이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데 최근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DARPA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뇌를 따라 만든 시스템으로 유기체가 어떻게 학습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가 성공할 경우 인공지능은 학습한 적 없으며 예측하지도 못한 불규칙한 상황에 직면해도 자기 나름대로의 대응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구글은 지난 5월 개최된 2017년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인공지능을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소개했다. 인공지능으로 새로운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오토ML’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의 신경망은 주로 과학자나 엔지니어 등 전문가 집단이 막대한 시간을 들여 구축해야 했다. 보통 강화학습이라고 불리는 이 과정은 시행착오, 보상 등을 통해 마치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것처럼 컴퓨터를 학습시킨다.
 
그런데 오토ML은 말 그대로 인공지능이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갖추게 될 때까지 스스로 반복학습을 실시한다. 따라서 오토ML이 개발되면 프로그래밍이나 알고리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원하는 결과만 지정해주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시스템을 설계해준다.
 
구글의 목표는 수십만명의 개발자가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신경망을 오토ML을 이용해 3~5년 이내에 개발하는 것이다. 성공할 경우 비전문가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특정 필요에 맞도록 맞춤형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어 모든 사람의 일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테크놀로지 매체인 ‘IEEE 스펙트럼’은 최근 발행한 특별판에서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언제 도래할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게재했다. 그에 따르면 구글 이사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와 같은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05년 레이 커즈와일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앞지르는 시기를 2045년으로 예측했다. 불과 12년 만에 특이점의 시기를 16년이나 앞당긴 것이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약간의 차이는 보였지만 인공지능의 특이점은 반드시 올 것이며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림2.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기를 2029년으로 앞당겼다.
 
물론 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과학자들도 있다. 현재 인간은 생물학적 지능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인간의 지능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아직 등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특이점의 근거가 되는 무어의 법칙도 이제 한계에 이르고 있다.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원자의 크기에 도달해 곧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에 대해 회의적인 과학자들은 이것이 특이점에 쉽게 도달할 수 없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본다.
 
한편 특이점의 등장을 걱정하기보다는 다양성(multiplicity)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인공지능이 언제 인간을 능가하게 될 것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인공지능과 협력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때라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기계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을 넘어섰다. 그리고 지능분야에서도 인간을 능가할 수 있는 토대가 하나 둘 쌓여가고 있다. 이제 인간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경기에서처럼 경쟁할 게 아니라 협력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그려야 할 때다.
 
 
글: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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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971호

 

 

 

 

  2017년 3월 미국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하루 만에 1000만원 정도의 작은 비용을 들여 15평짜리 주택을 짓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토록 빠른 속도와 저렴한 비용으로 집을 지을 수 있었던 비밀은 3D 프린터에 있다. 3D 프린터는 밑단부터 재료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미리 설계한 3차원 모형을 만드는 프린터를 말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3D 프린터는 주로 플라스틱과 같은 고분자 물질을 이용해 작은 모형을 만든다. 이 프린터를 통해 인공 뼈를 만들어 수술할 수도 있고 생체 재료를 이용해 인공 장기를 만드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3D 프린터로 빠르게 집을 짓는 비결은 ‘나노 기술’
 
3D 프린터의 크기를 키우고 들어가는 재료를 바꾼다면 집처럼 크고 거대한 물체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3D 프린터로 건물을 짓는 것은 이번 사례가 아니더라도 이미 가능하다고 알려진 기술이다. 지난해 2월 유럽우주국에서는 달 표면에서 영구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문 빌리지’를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건축 방법으로 3D 프린터를 선택했다. 건축용 3D 프린터를 달로 보낸 뒤 달의 토양을 이용해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그림1. 유럽우주국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드려고 계획한 달 기지 상상도 (출처: ESA)
 

 

3D 프린터로 집을 짓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부품(예를 들면 벽돌)을 낱개로 인쇄해 조립하던가, 거대한 3D 프린터를 제작해 한 번에 집을 인쇄한다. 이때 핵심은 프린팅할 ‘재료’다. 3D 프린터는 한 겹씩 쌓아가며 인쇄하는 방식이므로 빨리 굳으면서도 거대한 건축물을 지탱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단단해야 한다. 이러한 소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질의 기본 구조를 나노 단위에서부터 분석해야 한다. 서명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연구팀이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는 기존의 콘크리트에 섬유 소재를 넣어 보강하려는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또 폴리프로필렌처럼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소재를 응용시키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건축물에 3D 프린팅 방식을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여러 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2013년에는 민간 기업 주도로 탄소 섬유를 이용해 3D 프린팅용 콘크리트를 개발하기도 했다. 
 

 

3D 프린팅 기술은 아직 미완의 기술이다. 거대 규모의 3D 프린터를 만드는 작업도 쉽지 않거니와 이 프린터에 넣을 건축 잉크를 개발하는 것도 숙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100m2급 콘크리트 건물을 3D 프린터로 한 번에 쌓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고려대, 목양종합건축사사무소 등 16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5년간 13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나노 기술로 건물의 외형을 입힌다
 

 

3D 프린터로 뼈대를 만들었다면 본격적으로 집을 집답게 꾸며보자. 우선 콘크리트 외형이 그대로 남아 있을 외벽부터 손봐야 한다. 외벽에 단열재를 붙이고, 그 위에 벽돌을 덧대거나 페인트를 칠해 외형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나 아무리 예쁘게 페인트를 칠해도 시간이 흐르며 먼지에 오염돼 지저분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산화티타늄 나노입자를 이용하면 스스로 오염 물질을 분해해 깨끗한 외벽을 유지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림2. 민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청정에너지연구센터장팀이 개발한 형형색색 창호용 태양전지 (출처: KIST)
 

 

그 다음으로는 여러 가지 색을 띠는 유리창으로 건물 외형을 더 화려하게 만든다. 단순히 색을 입힌 색유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 태양전지’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민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청정에너지연구센터장 연구팀은 도영락 국민대 응용화학과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창문으로 사용할 수 있는 ‘창호용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기존 태양 전지가 검고 불투명한 실리콘 기판을 사용해온 것과 달리 이 태양 전지는 구리, 인듐, 갈륨 등으로 구성된 박막 태양전지로 여기에 특정 파장만 반사하는 나노 구조를 가진 필름을 입혀 반사하는 빛을 제외한 나머지 빛을 모두 흡수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방법으로 빨간 빛만 반사하도록 만들면 빨간색 창문을, 파란 빛만 반사하게 만들면 파란 창문을 만들 수 있다. 
 

 

이 태양전지는 태양빛을 일부는 반사하고 일부는 흡수하기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열차단 필름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건물 외형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색의 유리창은 덤이다.  
 

 

●건물 구조, 외형에 이어 에너지 절약도 책임진다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나노기술이 사용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사람이 사는 건물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반대로 문을 열고 닫을 때 발생하는 힘처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은 형태의 에너지가 발생되는 장소다. 그리고 이런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 연구되고 있다. 
 
나노하우스 03

 

그림3. 김연상 서울대 교수팀이 개발한 에너지 수확 소자에 물을 뿌리자 전기가 모이며

전구에 빛이 들어오는 모습 (출처: 전자부품연구원)

 

 

김연상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물방울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기술을 연구한다. 2014년에는 물방울이 전하를 가진 표면 위를 흐르면 전하가 변하는 성질을 이용해 전기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반도체인 에너지 수확소자를 개발했다. 연구에 따르면 40㎕(마이크로리터, 1㎕=10-6ℓ) 물 한 방울이 흐를 때 전력을 최대 0.42mW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략 LED 한 개를 밝힐 수 있는 수준이다. 샤워할 때 물을 한 방울만 쓰는 것은 아니므로 일상 생활에서 일부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전기는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마이크로리터 단위의 물방울에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는 당연하게 그보다 훨씬 정밀하게 만들어지며 제작 과정은 나노 단위로 제어된다. 집을 짓는 거대한 스케일과 물 한 방울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아주 작은 영역에서까지 나노기술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지원 : 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
글 : 오가희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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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967호


2967멜라닌 최종240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에게 새 크레파스를 사주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크레파스에 이름표를 붙여주던 날이었다. 빨강, 주황, 노랑, 연두, 초록, 파랑처럼 발음마저도 귀여운 색색의 크레파스 속에 낯선 이름이 하나 보였다. ‘살구색’이라는 이름의 크레파스였다. 필자가 어릴 적엔 ‘살색’이라고 불렸던 바로 그 색이었다. 2000년대 초 “크레파스의 특정 색을 ‘살색’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종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진정이 받아들여져 현재는 기술표준원에서 해당 색깔을 ‘살구색’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살색에서 살구색으로 글자 하나만 추가됐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어감이 확 달라져 훨씬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살색’은 저마다 다르다. 흰 눈처럼 창백한 하얀색부터 탐스러운 살구색, 잘 익은 알밤을 담은 갈색에서 밤하늘을 닮은 윤기 나는 검은색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이토록 다양한 이유는 사람마다 피부에 존재하는 멜라닌 색소의 종류와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멜라닌은 피부의 기저층에 존재하는 멜라닌세포(melanocyte)라는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갈색 혹은 검은색의 고분자의 색소 물질이다. 멜라닌세포가 멜라닌을 적게 합성할수록 피부는 희고 창백해지는 반면 많이 합성할수록 짙어지고 검게 변한다. 
 

사람들마다 유전적으로 멜라닌세포의 활성이 다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피부가 흰 사람과 검은 사람이 존재하지만, 한 개인의 일생을 살펴보면 멜라닌 세포의 활성이 늘 일정한 것은 아니다. 멜라닌의 합성은 외부 자극의 영향을 받아 조절되기 때문이다. 멜라닌의 활성을 증폭시키는 자극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외선이다. 자외선은 생물의 DNA 손상을 가져오므로 생물체는 특히 자외선과 맞닿은 피부세포의 손상을 줄이고자 멜라닌을 만들어 자외선을 막는다. 다시 말해 멜라닌은 피부에 그늘막을 덮어 해로운 자외선이 피부 세포 깊숙이 파고들어 DNA를 난도질하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보호 장치인 셈이다. 
 




그림1. 유럽인의 피부는 처음부터 희지 않았다. (출처: shutterstock)
 
지구의 대기권에는 오존층이 존재해 태양에서 유입되는 자외선의 거의 대부분을 막아내지만 오존층을 통과해 지상으로 유입되는 1~2%의 자외선만으로도 세포를 죽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따라서 지구상의 생물체들, 사실상 거의 모든 동물들은 멜라닌 색소를 갖고 있으며 인류의 조상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즉 지난 수백만 년간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피부색은 갈색 혹은 검은색이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인류의 피부에서 본격적으로 멜라닌이 적은 ‘흰 피부’가 나타난 것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시기 이후, 그러니까 최근 1만 년 안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인류학자들은 소위 ‘백인’들의 주요 거주지였던 유럽 전역에서 수집된 고대인 83명의 유전체를 분석해 고대 유럽인들의 모습을 유추하는 다국적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의 원래 목적은 지난 8000년 동안 유럽 지역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들이 가진 유전적 형질 중 환경적 특성에 영향을 받아 급속도로 퍼져 나간 유전적 형질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유럽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들이 지니고 있던 유전자 중 특히 5가지가 훗날 이들 지역에 살게 되는 후손들에게 널리 퍼져 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5개의 유전자 목록에는 유당을 분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유당분해유전자, 키를 커지게 하는 유전자군, 피부를 탈색시키는 유전자 2개(SLC24A5, SLC45A2), 그리고 금발과 흰 피부, 푸른 눈과 연관된 유전자 HERC2/OCA2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처음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발생한 인류는 유라시아 전역에 흩어졌고 점차 고위도 지역까지 서식지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타민 D 때문이었다. 비타민 D는 칼슘 대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인데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칼슘 대사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각종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골다공증과 구루병이며 이 밖에도 비타민 D의 부족으로 인해 당뇨, 근육통, 충치, 편두통, 우울증 및 기억감퇴증, 치매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각종 암의 발병율 역시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인체에서 칼슘이 가장 많이 축적돼야 하는 뼈의 이상은 결정적이다. 
 

비타민 D는 간, 우유 및 유제품, 버섯 등의 식품을 통해서 흡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피부를 통해서 직접 만들어진다. 우리의 피부 세포는 자외선을 이용해 콜레스테롤을 변형시켜 비타민 D를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자외선은 비타민 D를 만드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DNA 파괴자이므로 우리의 몸은 멜라닌을 통해 자외선을 적절하게 걸러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일조량이 풍부한 저위도 지역에서는 멜라닌을 통해 자외선의 대부분을 걸러내도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데 필요한 양을 얻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인류가 고위도 지역까지 올라가기 시작하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고위도 지역에는 일조량이 적어 자외선 조사량 자체가 적기 때문에 짙은 색의 피부가 걸러내는 미량의 자외선만으로는 충분한 양의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지역에 사는 경우에는 탈색 유전자가 작동해 피부색을 옅게 만들고 자외선 필터링을 줄여주는 것이 생존해 유리한 형질이 됐을 것이다. 그렇게 피부가 흰 사람들이 북부 유럽에 등장하게 된 이 시기가 약 8000년 전경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흰 피부의 사람들은 북부 유럽에 한정돼 있으며 이베리아 반도와 유럽 중앙에 살던 사람들의 피부는 여전히 짙은 색이었다. 흰 피부는 일조량이 부족한 곳에서 비타민 D를 공급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뿐 그 자체가 유리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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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2. 유당분해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흰 피부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출처: shutterstock)
 
흰 피부의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계기에는 엉뚱하게도 우유와 관계가 있다. 원래 인간은 어른이 되면 우유 속에 든 유당을 분해하는 능력이 사라진다. 유당을 분해하는 유당분해유전자는 젖을 떼고 난 이후 활동을 정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6000여 년 전부터 목축과 낙농을 주로 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유당분해유전자의 활성이 꺼지지 않는 돌연변이 종족들이 생겨나게 됐다.
 

이들은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게 되면서 덤으로 우유 속에 풍부하게 든 칼슘과 비타민 D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나 목축과 낙농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고 건조한 지역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흰 피부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우유 속에 풍부한 칼슘과 비타민 D 덕분에 이들의 뼈가 제대로 성장하며 충실도가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이들은 점차 세력권을 넓혀 나가게 됐다. 고대 유럽인들의 몸속에서 탈색유전자와 유당분해유전자, 키성장유전자군이 함께 선택된 건 이런 복합적이 환경과의 상호작용 때문이었다.

 
근대의 문화적 환경 속에서는 소위 ‘우월한 인자’로 간주됐던 유럽인의 흰 피부가 사실 햇빛이 부족한 지역에서 뼈가 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고대인들의 유전적 궁여지책일 뿐이었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가르고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부당한 행위인지를 알리는 것, 그것 역시도 과학의 역할인 것이다. 
 
 
글: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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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959호

 

 

 

 

2000년 시작된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올해로 17년째를 맞았다. 국방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한국전쟁 5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시작됐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 328고지에서 국군 유해가 처음 발견된 뒤 갈수록 많은 유해가 발굴되면서 사업을 계속 추진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2016년까지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1만 808구에 이른다. 이 중 국군과 유엔군이 9523구, 북한군과 중공군(현 중국군) 유해는 1284구다. 지난 1월 17일 고(故) 조영환 하사가 올해 처음으로 가족 품에 안겼다. 1928년 경기 화성군에서 4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조 하사는 1950년 8월 수도사단 17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지금까지 조 하사처럼 신원이 밝혀져 가족에게 돌아간 전사자는 121명으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중 1.2%에 머문다. 
 

 

 그림 1.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2016년까지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1만 808구에 이른다. 하지만 신원이 밝혀져 가족에게 돌아간 전사자는 121명으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중 1.2%에 머무르는 현실이다. (출처: 과학동아)

 

 

6·25 전쟁 당시 38선을 가운데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강원도와 경기도는 물론 낙동강 전선이 있었던 경상북도는 전사자 유해가 대량 발견되는 지역이다. 전쟁 당시 진지에선 사람의 넓적다리뼈, 정강뼈, 위팔뼈, 발가락뼈 등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유해는 주로 ‘생토층(한 번도 파헤친 적이 없는 원래 그대로의 땅)’에서 발견된다. 유해발굴은 문화재 발굴과 유사한 면이 많지만, 훨씬 신중하게 이뤄진다. 땅에 묻힌 문화재를 찾는 데 사용하는 ‘탐침’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유골 손상을 막기 위함이다. 유골 한 구를 수습하는 데는 보통 4~5시간을 훌쩍 넘긴다. 
 
우여곡절 끝에 수습된 유골은 유품과 함께 소관(작은 관)에 안치된다. 전사자 유골의 신원 확인은 중앙감식소가 맡는다. 매주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전사자 유해들이 이곳에 모인다. 옮겨진 유해에는 계급과 이름, 군번 대신 ‘13070040008’, ‘ 13090020231’ 등 11자리의 일련번호와 바코드가 붙는다.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전사자에게 부여되는 ‘임시군번’이다. 수집된 유골은 머리뼈, 어깨뼈, 넓적다리뼈 등 전신의 뼈가 90% 이상 남은 ‘완전유골’부터 넓적다리뼈 하나만 남은 경우 등 다양하다. 
 
신원 확인을 위한 과정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노천에 드러난 유골은 금세 성질이 바뀌어 DNA 표본을 추출하기 어려워진다. 강한 햇빛을 받으면 유골에 있던 칼슘 성분이 하얘지면서 푸석푸석해지는 ‘백화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국인과 체형이 다른 유엔군은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머리뼈 모양이나 넓적다리뼈를 보면 황인종인지, 백인종인지, 흑인종인지 차이가 뚜렷하다. 옆에서 볼 때 뒤통수가 볼록하게 길면 백인종, 두개골이 동그랗고 코가 낮으면 황인종에 속한다. 반면 조상이 같은 국군과 북한군, 중공군은 유골만 봐서는 구분하기 어렵다. 몇 가지 구별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참호가 파인 방향에 따른 구별법이다. 산 하나를 두고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탓에 참호를 판 비탈 방향을 보면 아군인지 적군인지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남쪽으로 난 비탈에 파놓은 호는 공산군, 북쪽으로 난 참호는 국군과 유엔군이 파놓은 것이 많다. 

 

 

 그림 2. 유해발굴단이 전사자의 유해를 식별하고 있다. 유해 식별은 뼈가 굵고 클수록 좋으며, 뼈 안에 단백질이 많이 남아 있을수록 식별 확률이 높다. (출처: 과학동아)

 

 

중앙감식소는 미국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와 어깨를 견줄 만큼 최신 발굴과 감식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신원 확인에는 법의학과 법치의학, 체질인류학 같은 기초과학이 동원된다. 감식관들은 뼈 부위별로 굵기나 길이를 재고 치과 치료 흔적이나 뼈가 부러진 흔적처럼 인적 특징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두개골 사진을 360° 방향에서 찍는 입체(3D)스캐너와 턱에 붙은 치아구조를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는 첨단 스캐너도 동원된다. 유해 한 구당 최소 100가지가 넘는 특징이 기록된다. 이 기록은 유가족들의 증언을 참조할 때 귀중한 근거로 사용된다. 
 
유가족의 혈액 채혈과 입속에서 채취한 DNA 샘플은 신원을 확인하는 최종 수단이자 결정적 단서로 활용된다. DNA 검사는 1984년 유전학자 앨릭 제프리스 영국 레스터대 교수가 개발했다. 실제로 지난 2월 암살된 김정남 씨의 신원 확인, 세월호 미수습자의 신원 확인에도 이 방법이 활용됐다.
 
유해발굴단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 유해의 유전자 자료를 보관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가족들이 채혈 등을 통해 유전자 샘플을 등록하면 양쪽 DNA 염기서열을 비교해 신원을 확인한다. 유골 가운데 넓적다리뼈, 종아리뼈, 위팔뼈에서 DNA 샘플을 채취하면 95~100% 가까이 신원을 알아낼 수 있다. 성공 확률은 뼈가 굵고 클수록, 뼈 안에 단백질이 많이 남아 있을수록 높다. 발가락뼈나 손가락뼈에서도 DNA 샘플 채취가 가능하지만,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DNA 비교 검사는 전사자의 8촌 이내 가족이면 유골의 신원을 충분히 밝힐 수 있다. 전사자가 딸일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반반씩 물려받는 상염색체(A-STR) 검사를 하면 부녀 관계인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모계혈통으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 검사는 전사자의 어머니와 남녀 형제, 외삼촌, 이모, 이모의 딸 등 모계혈통이면 확인이 가능하다.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X, Y염색체 가운데 Y염색체는 부계혈통으로 대를 이어 유전된다. Y염색체에서 반복되는 짧은 염기서열을 확인하면 남자 조상이 같은 집안의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사자의 아버지나 남형제, 아들, 친손자나 3~4촌 남성일 경우 성염색체(Y-STR) 검사를 하면 신원 확인을 할 수 있다. 전사자의 남동생이나 아들의 혈액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에게 유전되는 상염색체 검사와 병행해서 진행되기도 한다. 
 

그림 3. 신원 확인을 위해 유가족 채혈과 DNA 표본 채취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국방부는 현재까지 3만 7370명의 DNA 자료를 확보했다. (출처: 과학동아)

 

 

이런 이유로 유가족 채혈과 DNA 표본 채취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다. 국방부도 2004년부터 유가족 채혈행사를 열며 지금까지 약 3만 7370명의 DNA 자료를 확보했다. 그럼에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유해는 아직 120여 구에 머문다. 발굴된 유해에서 채취한 DNA와 유가족의 DNA가 일치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20세기 초부터 개인의 의료 기록과 치과 기록을 보유한 미국과 달리 우리는 유해만으로 신원을 밝힐 수 있는 근거 기록이 거의 없다. 그만큼 더 많은 유가족의 DNA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국방부는 아직도 12~13만 명에 가까운 국군 전사자의 유해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6만 명은 비무장지대(DMZ)나 북한 지역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전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미군 전사자도 8000명 이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북한군과 중공군, 민간인 전쟁 피해자를 포함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최근 들어 유가족의 유전자 공여를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7년이 넘으면서 전사자 가족들도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DNA를 확보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은 청년들이 참전하면서 2세들이 없는 경우가 많고 전사자의 자녀 역시 70~80세 이상의 고령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형제의 자식들이 살아 있다고 하지만 3, 4촌만 넘어가도 연고를 찾는 데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유해 매장 지역을 알려줄 제보자들도 줄고 있고 국토 개발이 진행되면서 유해가 매장된 지역 가운데 상당수가 훼손될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글 : 박근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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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930호

 

 

 

 

늘 계획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변수에 불안해하는 당신. 나름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한 계획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짜증이 나거나 속상한 당신이라면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완벽주의는 ’강박성 성격장애‘ 성향과 맞닿아 있다. 완벽해야하기 때문에 혹시 모를 변수를 계산해 대비책을 세우느라 늘 시간에 쫒기고 마음은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을까 불안해하고 실수를 두려워한다. 또 완벽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정작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우유부단하다. 
 
■ 완벽해야 해서 조급하고, 완벽하지 못할까봐 두렵다
의학적으로 완벽주의는 ’강박성 성격장애‘와 맞닿아 있다. 이 성향의 사람들의 모토는 ’사람이라면 매사 더 잘해야 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다. 완벽해야하기 때문이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 완벽주의다.

 

 그림 1. 강박성 성격장애는 매사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정서장애다. (출처: Shutterstock)

 

 

이 성향의 사람들은 ’더 잘해야 해서‘, ’더 노력해야 해서‘ 늘 계획을 무리하게 세우기 때문에 항상 바쁘고 조급하다. 완벽함을 위해 세부 사항에 집중하다 오히려 큰 맥락을 놓치거나 일을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완벽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일의 마감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시험 공부 방식에서도 성향이 드러난다. 강박성 성격장애 성향의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해도 시험 범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려고 애쓴다. 내용을 한 번다 보는 것에 매인 나머지 정작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을 암기하는 데는 시간을 충분히 쓰지 못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
 
또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이 두려움은 스스로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슬픔과 분노 등의 감정도 억누른다. 소위 ’꼰대짓‘도 많이 한다. 자신의 생각과 방법에 대한 기준이 완고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조언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내가 경험해보니 ’내 방법이 옳아‘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거나 팀 단위로 일하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출판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의 진단 기준을 보면 이 외에도 지나치게 도덕적이거나 양심적이고, 언제 어떻게 쓸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물건을 잘 못 버리며,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돈에 인색하거나 돈 걱정을 많이 한다는 특징도 있다.
 
■ ’하면 안 되는 게 많았던 어린 시절‘, 강박성 성격장애 원인일수도
강박성 성격장애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모의 과잉통제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부모 기준에서 아이가 하지 말아야 할 것,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아이는 기준과 원칙에 집착해 스스로를 강박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과잉 통제되면서 정작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자라게 되고 자존감은 낮아지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커졌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원인은 무의식적인 학습이다. 전문가들은 ”강박성 성격장애 성향이 있는 사람의 가족을 보면 같은 성향의 구성원이 있다“ 며 ”많은 경우 부모나 부모 중 한사람이 강박성 성격장애 성향으로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행동과 사고를 학습 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림 2. 스트레스는 강박성 성격장애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출처: Shutterstock)

 

 

스트레스도 이유로 꼽힌다.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심리에서 강박적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사회 환경도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더 많은 스펙을, 더 많은 능력을 요구받으면서도 미래는 불안한 사회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 완벽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남아도 실수하면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강박 장애를 키운다는 것이다.
 
방법은 없을까. 강박성 성격장애의 의학적 치료법은 인지 행동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완벽한 성공 아니면 모두 실패로 치부하는 흑백논리를 지양하고 실패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하는 등 긍정적으로 사고하라는 가이드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0과 100으로만 평가하던 사고에서 벗어나 60점, 80점 등으로 평가를 세분화하고 이를 언어 습관에 적용할 것을 조언한다. 예를 들어 “이번 시험은 망쳤어”어 대신 이번 시험은 세 문제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지 치료의 목표는 사실 ’괜찮아‘할 수 있는 마음이다. 실수 좀 해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하지 않았던, 혹은 사랑받기 위해 지켰던 규칙들과 상관없이 당신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강박을 하는지 아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강박하는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말해 주면 된다. 괜찮다, 다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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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886호

 

 

 

표고, 느타리, 팽이 등 버섯은 당근이나 양파처럼 여느 집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다. 이 버섯이 부엌 밖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시대가 열렸다.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구할 영웅으로 과학자들이 버섯을 호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버섯은 플라스틱 대용품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미 델 컴퓨터, 이케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 다투어 컴퓨터와 가구 등의 대형 제품 포장 완충제로 스티로폼 대신 버섯을 사용하고 있다. 만드는 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버섯 포자를 물, 톱밥이나 곡식 껍데기 등 농임업 부산물과 함께 틀에 부어 번식하도록 한 뒤 건조시킨다. 균류는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맞게 자라는 성질이 있어 틀에 꼭 맞게 번식한다. 게다가 매우 빠른 속도로 자라기 때문에 이 공정은 5일 정도면 완료된다. 
 
■ 변질 없고 견고한 버섯 스티로폼 
완성된 제품은 ‘곰팡이’를 원료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질이 거의 없으며 견고하다. 틀에 부어 굳히는 제작방식은 플라스틱과 비슷하다. 하지만 플라스틱과는 달리 원재료는 버섯 포자와 유기물질, 물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사용을 완료한 제품은 100% 자연으로 돌아간다. 플라스틱이 수백, 수 천 년 동안 썩지 않고 생태계에 잔류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버섯이 아직까지는 스티로폼을 대체하는 역할로 주로 쓰이지만, 연구자들은 앞으로 각종 용기 및 가죽 제품, 가구 제작까지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사진. 버섯 균사로 만든 스티로폼. (출처: Ecovative) 

 

 

버섯은 마트의 채소 코너에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 식물이 아니다. 버섯은 균류에 속한다. 동물처럼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마법은 버섯의 뿌리처럼 보이는 부분인 균사체(mycelium)에서 시작된다. 균사체는 포자가 발아하면서 생성된 균사가 서로 얽힌 집합체인데, 만들어진 균사체는 바로 땅속으로 스며든다. 이들은 마치 신경조직이나 인터넷 망처럼 서로 뻗어나가며 복잡하게 얽힌 망을 형성한다. 진균학자 폴 스테이멋츠에 따르면 1㎥의 토양에 존재하는 균사체의 총 길이는 약 13km에 달한다. 이렇게 형성된 버섯 균사체는 토양을 응집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며 매우 견고하다. 자기 질량의 3만 배까지 응집할 수 있다. 

 
최근 건축 분야는 버섯 균사체에 주목한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매년 13~15억 톤, 이 중 40~50% 가량이 건축 폐기물이다. 건축물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중국의 경우 25~30년에 불과하다. 폐기물 처리에 건축의 미래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상용화된 건 단열재다. 2007년 미국 뉴욕주 렌슬레어공대생인 에번 베이어와 개빈 매킨타이어는 애느타리버섯을 이용해 단열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물, 전분, 과산화수소와 버섯포자를 이용해 만든 이 단열재는 내구성과 단열성능, 열저항성 등에 있어 기존 단열재에 뒤지지 않는 성능을 보이며, 완성된 단열재가 변질되는 일도 거의 없다.
 
더 나아가 버섯으로 건축물을 짓는 시도도 있다. 프로젝트 건축팀 ‘더리빙’은 지난 2014년 3가지 종류의 버섯 균사체로 만든 벽돌 1만 개를 쌓아 약 13m 높이의 건축물을 세웠다. ‘하이-파이(Hy-Fi)’라 명명된 이 건물은 3개월간 전시된 뒤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 ‘버섯 벽돌’은 압축 강도가 콘크리트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장점이 있다. 

 

 사진. 프로젝트 건축팀 ‘더리빙’이 3가지 종류의 버섯 균사체로 만든 벽돌 1만 개를 쌓아 만든 건축물 ‘하이-파이(Hy-Fi)’. (출처: Amy Barkow, Barkow Photo

 

버섯은 석유 화학물의 대체품일 뿐 아니라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 포토벨로,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등의 버섯 균사체는 토양에 유출된 중금속과 기름 등 독소를 정화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버섯 균사는 인간에게 적합한 항생제 및 항진균, 항종양제 개발의 원료가 된다. 음식에서 쓴맛을 없애 설탕 중독을 해결할 대안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그밖에도 영지버섯을 이용해 가죽 제품을 만드는 마이코웍스(MycoWorks), 버섯균사체가 유기물과 접촉하면 분해되는 특징을 활용해 임무 종료 뒤 소멸되는 ‘일회용’ 드론을 개발하는 아더랩(Otherlab) 등 여러 스타트업 기업들이 버섯을 이용해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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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950호

 

 

건네받은 안경을 쓴 한 젊은 남성이 아들의 그림을 보고는 눈물을 흘린다. 이어 남성은 “이렇게 다양한 색이 있는 줄 몰랐다”며 “멋진 그림”이라며 감동을 전한다. 적록색맹을 위한 색 보정 안경을 개발한 회사의 광고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색의 향연이 색각이상자에게는 그 자체가 ‘감동’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인간에게 온전히 색을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림 1. 색맹안경은 색채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색맹인 사람 모두가 사진처럼 흑백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니다. (출처: Shutterstock)

 

 

인간이 눈으로 식별 할 수 있는 색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색각이상’이라고 한다. 색은 망막에 있는 원추세포가 결정한다. 원추세포는 약 700만개로 크게 적색과 녹색, 청색의 가시광선을 인식하는 3종류로 나뉜다. 세 종류의 원추세포는 마치 삼원색처럼 색을 배합하고 배합 비율에 따라 다양한 색을 인식한다. 한 종류의 원추세포는 약 100가지 정도의 농담 차이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가진 일반인은 100의 3제곱인 100만 가지의 색을 구별할 수 있다.

색각이상은 원추세포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난다. 기능이 약한 경우는 색약, 특정 원추세포가 없는 경우는 색맹으로 분류한다. 색맹 중 가장 흔한 경우는 녹색을 인식할 수 없는 녹색맹과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다. 적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색맹과 청색 원추세포 이상으로 청색과 노란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청황 색맹도 있다. 드물게 적색 녹색 원추세포의 기능이 약해 나타나는 청색약(보라색약)도 있다. 또 세 종류의 원추세포 모두 기능 이상으로 색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전 색각이상도 있다.
 

 그림 2. 적록색맹을 확인하기 위한 색각테스트용지 (출처: Shutterstock)

 

 

색각이상자의 세상은 어떤 색일까. 녹색맹은 신호등에서 빨간색과 노란불을 거의 비슷하게 인식하고 녹색불은 흰색으로 인식한다. 적색맹은 빨간불의 붉은 색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빨간불과 노란불, 초록불의 색이 다르다는 것은 인식할 수 있다. 전 색각이상자는 보는 세상은 흑과 백, 회색빛이다. 
 

■ 색 보정안경으로 녹색과 빨강색을 되찾다
색각 이상은 선천적 이상으로 유전적인 경우가 많다. 동양인 보다 서양인이 많다. 우리나라는 남성이 전체의 약 6%, 여성은 약 0.4%가 색각이상자로 추정되고 있다. 남성 비율이 높은 이유는 색을 인식하는 원추세포 유전자가 X 염색체 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X염색체는 성염색체인데, 여성은 XX, 남성은 XY다. 색맹은 열성유전으로 남성의 경우, X염색체가 열성이면 색맹이 된다.

후천성도 있다. 당뇨망막증이나 황반변성, 녹내장, 시신경유두부종, 시신경염 등으로 색맹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원인 질환의 치료 정도에 따라 증상이 호전되거나 악화된다.

선천적으로 발생한 색맹은 현재까지 치료가 불가능하다. 이에 색맹을 위한 특수 안경과 앱(APP)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미국의 엔크로마((EnChroma)가 개발한 안경이다.
 
이 안경은 빨강과 녹색, 파랑 등 원색 사이의 빛의 파장을 차단하는 필터를 이용해 색의 경계를 만들어 신경세포가 색을 서로 다르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색맹인 사람의 원추세포는 빛의 파장에 따른 색을 섬세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비슷한 색으로 인식하고 반응한다는 점을 이용했다. 이 안경은 적록 색맹에게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보라색은 구분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림 3. 엔크로마의 색보정 안경. 적록색맹에게 효과가 좋지만 실내에서 사용하기는 어렵다. (출처: Cnet)

 

 

 

미국의 칼라뷰(ColorView)가 선보인 색 보정 안경도 있다. 안경을 통해 색약자에게 결핍된 색의 빛은 많이 투과시키고 과하게 반응하는 색은 적게 투과시켜 색을 보정하는 원리다. 예를 들어 녹색 색약자는 녹색 빛의 강도를 2배 증가시켜 보여주면 녹색을 정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색약자용으로 개별 맞춤이 가능하다. 녹색 색약자의 경우, 녹색에 반응하지 못하는 정도를 검사해 이에 맞게 안경을 코팅해 색을 보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렌즈 코팅이 특정 색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녹색과 적색의 중간인 노란색 등 다른 색에 대해서는 세밀한 보정이 어렵다.

색약자를 위한 앱도 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시한 ‘컬러 버나큘러스(Color Binoculars)’다. 빨강색과 녹색, 녹색과 빨강색, 파란색과 노란색, 세 가지 모드로 특정 색상을 강조해 보여줘 색 보정 효과를 낸다.

비슷한 원리의 소프트웨어도 있다. 예를 들어 적색 색약인 경우 모니터에서 적색을 필요한 만큼 진하게 표현해 색을 보정한다. 보정 안경과 달리 녹색과 적색, 중간색인 노란색도 개개인에 맞춰 세밀한 보정이 가능하다.
 

 

 그림 4. 엔크로마의 원리. 색의 파장을 인위적으로 변조해서 원추세포가 분명히 다른 신호로 인식하게 하는 원리다. 

 

 

■ 색맹, 유전자로 치료 가능해질까
불가능의 영역으로 인식됐던 색맹 치료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제인 니츠와 아내 모린 니츠 연구팀은 지난 2009년 색맹인 수놈 다람쥐 원숭이를 대상으로 유전자 치료 시험을 시행해 성공했다. 연구팀은 인간의 광색소 유전자를 바이러스 매개체(Viral vector, 유전자를 체내 세포로 운반하는 재조합 바이러스)에 넣어 다람쥐 원숭이의 망막에 주입했다. 5개월 후 원숭이는 컴퓨터에 제시된 색상을 제대로 알아맞히면 과자를 받는 방식의 색각 테스트에 통과했다. 하지만 망막 주사를 사람에게 적용할 경우, 실명 위험이 있다.


니츠 연구팀은 현재 안전하게 유전자를 전달할 방법으로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투명한 물질인 유리체에 주사를 놓는 방법에 대해 연구 중이다. 유리체 주사는 황반변성을 치료하는 데 쓰일 정도로 일반적이지만 유전자를 주입했을 때 유전자가 원추세포라는 목적지를 확실히 찾아가게 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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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제2942호

 

 

 

 

모두가 잠든 새벽, 냉장고 문 안쪽 선반이 소란스럽다.

“야, 참기름! 너 오늘도 여기서 잘 거야?” 
 
“자리도 넉넉한데 왜 타박이니?”
 
“뉴스 못 봤어? 냉장고 선반에 참기름 병을 두다가 선반이 부서져서 사람이 다쳤다고 하잖아.” 
 
“정말이야?” 
 
나란히 놓여 있던 케첩, 마요네즈, 돈가스 소스, 샐러드드레싱이 깜짝 놀라 웅성거린다. 
 
산패가 빠른 들기름을 비롯해 참기름도 냉장고에 보관하는 이들이 많다. 흔히 쓰기 편한 문 쪽 선반에 각종 소스류와 함께 둔다. 지난달 냉장고 문 선반이 파손되는 사고에서 참기름이 원인으로 지목되자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다. 냉장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냉장고 내장재는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흰색 내벽에는 강도가 높은 ABS (Acrylonitrile-Butadiene-Styrene resin)가 주로 사용된다. ABS는 충격에 강하고 화학적인 변화가 크지 않으면서 성형하기 쉬운 소재다. 그런데 냉장고 안에 음식을 올려 두는 선반에는 이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ABS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투명하게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냉장고 선반에는 폴리스타이렌, 즉 PS 소재가 주로 사용된다. PS는 성형하기 쉽고 투명성이 높다. CD케이스, 일회용 컵 등이 PS로 만든 대표적인 제품. PS는 딱딱하지만 충격과 기름 성분에 약한 것이 단점이다. PS의 충격 강도를 개선한 소재로 고무를 배합한 HIPS(High Impact PS)가 있다. 충격 강도는 고무 함량이 높을수록 커지는 반면 투명성은 낮아진다. 투명한 선반을 만들기 위해 스타이렌과 아크릴을 합성한 SAN (Styrene-AcryloNitrile copolymer)도 사용된다.

플라스틱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한 말이다.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이 가능하다는 뜻. 고분자 화합물인 플라스틱은 쉽게 성형되고 접합과 표면 처리가 쉽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언제나 변형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고, 뜨거운 음식을 담으면 환경호르몬이 배출된다. 
 
그렇다면 음식을 담는 냉장고 선반은 어떨까. 반찬이니 양념류는 대체로 용기에 담아 보관하고 저온이 유지되므로 냉장고 속은 언뜻 보면 플라스틱이 변형될 위험이 없는 공간 같다. 하지만 기름이 용기 밖으로 새어 나와 플라스틱 선반이나 벽면에 오래 흡착돼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플라스틱은 어떤 종류든 석유에서 추출해 만드는 만큼 유기용매에 녹아내린다. 따라서 플라스틱은 기름과 멀수록 좋다. 기름이 흘러도 그저 고여 있다면 플라스틱의 안정성을 흔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흡착돼 있으며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들어오는 공기와 만나 기화하면 변형이나 균열, 파손을 일으킬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최근 언론 보도로 화제가 된 참기름이 아니라도 버터나 샐러드드레싱, 마요네즈 등 기름 성분이 포함돼 있다면 무엇이든 합성수지, 플라스틱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냉장고 내장재로 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있다면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청결이 최우선이다. 
 
“불안한데…. 플라스틱 말고 다른 소재로 선반을 만들어주면 안 되나?” 

 

 그림 1. 옛날의 냉장고는 선반을 철로 만들어 달았다.

 

 

“1930년대 만들어진 냉장고는 철제 선반이 달려 있어. 신기하지?” 


“전기냉장고 생기기 전에는 목재에 양철판을 대서 만든 냉장고도 있었대.” 

냉장고 속 음식들이 저마다 떠들어대자, 참기름이 억울하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거봐, 나만 문제가 아니잖아.” 

“네가 몸에 기름을 많이 묻히고 들어오니까, 그렇지. 나도 혹시 어디 흐른 곳 없는지 봐야겠다.”

올리브오일로 만든 샐러드드레싱이 이리저리 둘러본다. 마요네즈는 냉장고 안에 있으면 기름이 분리될지 몰라 불안했는데 이참에 나갈까 하는 표정을 짓는다. 

위 칸의 계란들이 수군댄다. “우리도 옮겨주면 좋겠다. 냉장고 문 여닫을 때 흔들려서 노른자들이 다 풀어질 지경이야. 공기에 닿으면 신선도도 떨어지고. 내 껍데기에 붙은 살모넬라균이 냉장고 속으로 퍼질 수도 있다고!” 

“그렇지, 그래. 냉장고 문 자주 여닫는 건 질색이야.” 다들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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