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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소식

[KISTI 과학향기] 심해생물의 특별한 짝짓기

<KISTI의 과학향기> 제3125호

 

 

 

2018년 3월, 처음으로 심해아귀가 짝짓기하는 영상이 촬영돼 화제가 됐다. 심해는 지상과는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짝짓기가 벌어진다. 도대체 심해아귀가 어떻게 짝짓기를 하길래?
 
암컷에 몸에 붙어버리는 수컷 심해아귀

 

수컷 아귀와 암컷 아귀는 몸 크기가 크게 차이난다. 수컷은 고작 암컷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암컷과 같이 있으면 마치 어미와 새끼처럼 보인다. 암컷은 살이 통통하고 느릿느릿 헤엄친다. 반면 수컷은 재빠르게 헤엄친다. 암컷을 발견하면 신속하게 달려가기 위해서다. 암컷도 수컷의 눈에 잘 띄도록 머리에 불이 반짝이는 초롱을 달고 있다. 수컷의 커다란 눈은 어둠 속에서도 이 불빛을 보고 암컷을 잘 찾아낸다. 암컷은 또한 몸에서 화학물질을 내뿜어 수컷을 유혹한다. 시각과 후각을 모두 사용해 서로 짝을 찾는 것이다.
 
암컷을 만난 수컷 심해아귀는 암컷의 배를 물어뜯는다.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암컷과 수컷은 결국 한 몸이 돼 평생 붙어산다. 암컷보다 훨씬 작은 수컷은 정자를 제공하는 역할만 하며 대신 암컷은 수컷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사진 1. 처음으로 심해아귀의 짝짓기 장면을 촬영한 사진. 큰 아귀 밑에 있는 작은 물고기가 수컷이다. (출처: youtube 캡처)

 

갈수록 쉽게 이혼하는 인간의 세태와 비교하면, 한번 만나 좋든 싫든 평생을 같이 사는 심해아귀가 존경스럽다. 그러나 일부일처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암컷의 배에는 여러 마리의 수컷이 달라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수컷은 암컷을 만날 기회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미 다른 수컷이 달라붙어 있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눈이 거의 퇴화돼 다른 수컷들이 암컷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기도 힘들겠지만.
 
암컷 심해아귀는 난소에 약 5억 개의 알을 가지고 있다. 산란할 때는 수컷도 동시에 정자를 방출해야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암컷은 자신의 성호르몬으로 수컷의 정자 방출 시기를 조절한다. 수컷이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숨 쉬는 일밖에 없다.
 
많은 심해 생물들이 심해아귀처럼 짝을 찾기 위해 빛을 이용한다. 발광기를 가지고 있는 새우나 오징어, 물고기는 종류에 따라 빛의 색깔이나 깜빡거리는 주기, 발광기의 형태 등이 다르다. 심지어 같은 종이라도 암컷과 수컷이 내는 빛의 형태가 다른 경우도 있다. 서로 다른 빛의 형태는 각각의 심해생물에게 외국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런 차이점은 어둠 속에서 짝을 찾는데 매우 유용하다.
 
정자 미사일을 발사하는 집낙지

 

심해에 사는 문어 종류인 집낙지도 번식 습성이 신기하다. 집낙지도 암컷과 수컷의 크기 차이가 많이 나는데, 암컷은 몸 크기가 보통 10cm 정도로, 다 자라면 45cm나 되는 것도 있다. 이에 반해 수컷은 다 성장해야 고작 2cm 정도밖에 안 된다. 크기는 비록 작지만 번식 전략만큼은 뛰어나다. 수컷은 촉수가 달린 정자주머니를 만드는데 암컷을 만나면 자신의 생식기를 떼어버린다. 떨어진 생식기는 마치 목표물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처럼 스스로 헤엄쳐 암컷에게로 다가간다. 수컷 생식기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암컷에게로 헤엄쳐간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사진 2. 미사일처럼 생식기를 발사하는 집낙지의 모사도. (출처: wikipedia)
 
 짝이 없다면 스스로

 

이처럼 심해생물은 짝짓기를 위한 묘책을 개발해 왔다. 그러나 짝을 찾는 것이 귀찮은 심해생물이라면 자웅동체가 해결책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인근 심해에 사는 상어 종류처럼 심해생물 중에는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관을 모두 갖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느리게 움직이거나 바닥에 붙어사는 심해동물들 중에서 암수가 한몸인 경우를 볼 수 있다. 굳이 짝을 찾으려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 좋아 보일수도 있지만, 유전학적으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밖에도 다양한 심해생물의 번식전략은 우리 눈에는 희한하게 보일지라도 이들에게는 오랜 시간 축적해온 생존을 위한 삶의 지혜다.
 
글 :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