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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소식

[과학향기] 어느 참전 용사의 67년만의 귀향

<KISTI의 과학향기> 제2959호

 

 

 

 

2000년 시작된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올해로 17년째를 맞았다. 국방부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한국전쟁 5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시작됐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 328고지에서 국군 유해가 처음 발견된 뒤 갈수록 많은 유해가 발굴되면서 사업을 계속 추진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2016년까지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1만 808구에 이른다. 이 중 국군과 유엔군이 9523구, 북한군과 중공군(현 중국군) 유해는 1284구다. 지난 1월 17일 고(故) 조영환 하사가 올해 처음으로 가족 품에 안겼다. 1928년 경기 화성군에서 4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조 하사는 1950년 8월 수도사단 17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지금까지 조 하사처럼 신원이 밝혀져 가족에게 돌아간 전사자는 121명으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중 1.2%에 머문다. 
 

 

 그림 1.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2016년까지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1만 808구에 이른다. 하지만 신원이 밝혀져 가족에게 돌아간 전사자는 121명으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중 1.2%에 머무르는 현실이다. (출처: 과학동아)

 

 

6·25 전쟁 당시 38선을 가운데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강원도와 경기도는 물론 낙동강 전선이 있었던 경상북도는 전사자 유해가 대량 발견되는 지역이다. 전쟁 당시 진지에선 사람의 넓적다리뼈, 정강뼈, 위팔뼈, 발가락뼈 등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유해는 주로 ‘생토층(한 번도 파헤친 적이 없는 원래 그대로의 땅)’에서 발견된다. 유해발굴은 문화재 발굴과 유사한 면이 많지만, 훨씬 신중하게 이뤄진다. 땅에 묻힌 문화재를 찾는 데 사용하는 ‘탐침’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유골 손상을 막기 위함이다. 유골 한 구를 수습하는 데는 보통 4~5시간을 훌쩍 넘긴다. 
 
우여곡절 끝에 수습된 유골은 유품과 함께 소관(작은 관)에 안치된다. 전사자 유골의 신원 확인은 중앙감식소가 맡는다. 매주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전사자 유해들이 이곳에 모인다. 옮겨진 유해에는 계급과 이름, 군번 대신 ‘13070040008’, ‘ 13090020231’ 등 11자리의 일련번호와 바코드가 붙는다.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전사자에게 부여되는 ‘임시군번’이다. 수집된 유골은 머리뼈, 어깨뼈, 넓적다리뼈 등 전신의 뼈가 90% 이상 남은 ‘완전유골’부터 넓적다리뼈 하나만 남은 경우 등 다양하다. 
 
신원 확인을 위한 과정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노천에 드러난 유골은 금세 성질이 바뀌어 DNA 표본을 추출하기 어려워진다. 강한 햇빛을 받으면 유골에 있던 칼슘 성분이 하얘지면서 푸석푸석해지는 ‘백화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국인과 체형이 다른 유엔군은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머리뼈 모양이나 넓적다리뼈를 보면 황인종인지, 백인종인지, 흑인종인지 차이가 뚜렷하다. 옆에서 볼 때 뒤통수가 볼록하게 길면 백인종, 두개골이 동그랗고 코가 낮으면 황인종에 속한다. 반면 조상이 같은 국군과 북한군, 중공군은 유골만 봐서는 구분하기 어렵다. 몇 가지 구별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참호가 파인 방향에 따른 구별법이다. 산 하나를 두고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탓에 참호를 판 비탈 방향을 보면 아군인지 적군인지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남쪽으로 난 비탈에 파놓은 호는 공산군, 북쪽으로 난 참호는 국군과 유엔군이 파놓은 것이 많다. 

 

 

 그림 2. 유해발굴단이 전사자의 유해를 식별하고 있다. 유해 식별은 뼈가 굵고 클수록 좋으며, 뼈 안에 단백질이 많이 남아 있을수록 식별 확률이 높다. (출처: 과학동아)

 

 

중앙감식소는 미국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와 어깨를 견줄 만큼 최신 발굴과 감식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신원 확인에는 법의학과 법치의학, 체질인류학 같은 기초과학이 동원된다. 감식관들은 뼈 부위별로 굵기나 길이를 재고 치과 치료 흔적이나 뼈가 부러진 흔적처럼 인적 특징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두개골 사진을 360° 방향에서 찍는 입체(3D)스캐너와 턱에 붙은 치아구조를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는 첨단 스캐너도 동원된다. 유해 한 구당 최소 100가지가 넘는 특징이 기록된다. 이 기록은 유가족들의 증언을 참조할 때 귀중한 근거로 사용된다. 
 
유가족의 혈액 채혈과 입속에서 채취한 DNA 샘플은 신원을 확인하는 최종 수단이자 결정적 단서로 활용된다. DNA 검사는 1984년 유전학자 앨릭 제프리스 영국 레스터대 교수가 개발했다. 실제로 지난 2월 암살된 김정남 씨의 신원 확인, 세월호 미수습자의 신원 확인에도 이 방법이 활용됐다.
 
유해발굴단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 유해의 유전자 자료를 보관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가족들이 채혈 등을 통해 유전자 샘플을 등록하면 양쪽 DNA 염기서열을 비교해 신원을 확인한다. 유골 가운데 넓적다리뼈, 종아리뼈, 위팔뼈에서 DNA 샘플을 채취하면 95~100% 가까이 신원을 알아낼 수 있다. 성공 확률은 뼈가 굵고 클수록, 뼈 안에 단백질이 많이 남아 있을수록 높다. 발가락뼈나 손가락뼈에서도 DNA 샘플 채취가 가능하지만,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DNA 비교 검사는 전사자의 8촌 이내 가족이면 유골의 신원을 충분히 밝힐 수 있다. 전사자가 딸일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반반씩 물려받는 상염색체(A-STR) 검사를 하면 부녀 관계인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모계혈통으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 검사는 전사자의 어머니와 남녀 형제, 외삼촌, 이모, 이모의 딸 등 모계혈통이면 확인이 가능하다.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X, Y염색체 가운데 Y염색체는 부계혈통으로 대를 이어 유전된다. Y염색체에서 반복되는 짧은 염기서열을 확인하면 남자 조상이 같은 집안의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사자의 아버지나 남형제, 아들, 친손자나 3~4촌 남성일 경우 성염색체(Y-STR) 검사를 하면 신원 확인을 할 수 있다. 전사자의 남동생이나 아들의 혈액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에게 유전되는 상염색체 검사와 병행해서 진행되기도 한다. 
 

그림 3. 신원 확인을 위해 유가족 채혈과 DNA 표본 채취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국방부는 현재까지 3만 7370명의 DNA 자료를 확보했다. (출처: 과학동아)

 

 

이런 이유로 유가족 채혈과 DNA 표본 채취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다. 국방부도 2004년부터 유가족 채혈행사를 열며 지금까지 약 3만 7370명의 DNA 자료를 확보했다. 그럼에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유해는 아직 120여 구에 머문다. 발굴된 유해에서 채취한 DNA와 유가족의 DNA가 일치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20세기 초부터 개인의 의료 기록과 치과 기록을 보유한 미국과 달리 우리는 유해만으로 신원을 밝힐 수 있는 근거 기록이 거의 없다. 그만큼 더 많은 유가족의 DNA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국방부는 아직도 12~13만 명에 가까운 국군 전사자의 유해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6만 명은 비무장지대(DMZ)나 북한 지역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전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미군 전사자도 8000명 이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북한군과 중공군, 민간인 전쟁 피해자를 포함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최근 들어 유가족의 유전자 공여를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7년이 넘으면서 전사자 가족들도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DNA를 확보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은 청년들이 참전하면서 2세들이 없는 경우가 많고 전사자의 자녀 역시 70~80세 이상의 고령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형제의 자식들이 살아 있다고 하지만 3, 4촌만 넘어가도 연고를 찾는 데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유해 매장 지역을 알려줄 제보자들도 줄고 있고 국토 개발이 진행되면서 유해가 매장된 지역 가운데 상당수가 훼손될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글 : 박근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