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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소식

[과학향기] 냉장고 내부는 온통 플라스틱, 자나 깨나 기름 조심!

<KISTI의 과학향기> 제2942호

 

 

 

 

모두가 잠든 새벽, 냉장고 문 안쪽 선반이 소란스럽다.

“야, 참기름! 너 오늘도 여기서 잘 거야?” 
 
“자리도 넉넉한데 왜 타박이니?”
 
“뉴스 못 봤어? 냉장고 선반에 참기름 병을 두다가 선반이 부서져서 사람이 다쳤다고 하잖아.” 
 
“정말이야?” 
 
나란히 놓여 있던 케첩, 마요네즈, 돈가스 소스, 샐러드드레싱이 깜짝 놀라 웅성거린다. 
 
산패가 빠른 들기름을 비롯해 참기름도 냉장고에 보관하는 이들이 많다. 흔히 쓰기 편한 문 쪽 선반에 각종 소스류와 함께 둔다. 지난달 냉장고 문 선반이 파손되는 사고에서 참기름이 원인으로 지목되자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다. 냉장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냉장고 내장재는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흰색 내벽에는 강도가 높은 ABS (Acrylonitrile-Butadiene-Styrene resin)가 주로 사용된다. ABS는 충격에 강하고 화학적인 변화가 크지 않으면서 성형하기 쉬운 소재다. 그런데 냉장고 안에 음식을 올려 두는 선반에는 이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ABS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투명하게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냉장고 선반에는 폴리스타이렌, 즉 PS 소재가 주로 사용된다. PS는 성형하기 쉽고 투명성이 높다. CD케이스, 일회용 컵 등이 PS로 만든 대표적인 제품. PS는 딱딱하지만 충격과 기름 성분에 약한 것이 단점이다. PS의 충격 강도를 개선한 소재로 고무를 배합한 HIPS(High Impact PS)가 있다. 충격 강도는 고무 함량이 높을수록 커지는 반면 투명성은 낮아진다. 투명한 선반을 만들기 위해 스타이렌과 아크릴을 합성한 SAN (Styrene-AcryloNitrile copolymer)도 사용된다.

플라스틱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한 말이다.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이 가능하다는 뜻. 고분자 화합물인 플라스틱은 쉽게 성형되고 접합과 표면 처리가 쉽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언제나 변형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고, 뜨거운 음식을 담으면 환경호르몬이 배출된다. 
 
그렇다면 음식을 담는 냉장고 선반은 어떨까. 반찬이니 양념류는 대체로 용기에 담아 보관하고 저온이 유지되므로 냉장고 속은 언뜻 보면 플라스틱이 변형될 위험이 없는 공간 같다. 하지만 기름이 용기 밖으로 새어 나와 플라스틱 선반이나 벽면에 오래 흡착돼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플라스틱은 어떤 종류든 석유에서 추출해 만드는 만큼 유기용매에 녹아내린다. 따라서 플라스틱은 기름과 멀수록 좋다. 기름이 흘러도 그저 고여 있다면 플라스틱의 안정성을 흔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흡착돼 있으며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들어오는 공기와 만나 기화하면 변형이나 균열, 파손을 일으킬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최근 언론 보도로 화제가 된 참기름이 아니라도 버터나 샐러드드레싱, 마요네즈 등 기름 성분이 포함돼 있다면 무엇이든 합성수지, 플라스틱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냉장고 내장재로 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있다면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청결이 최우선이다. 
 
“불안한데…. 플라스틱 말고 다른 소재로 선반을 만들어주면 안 되나?” 

 

 그림 1. 옛날의 냉장고는 선반을 철로 만들어 달았다.

 

 

“1930년대 만들어진 냉장고는 철제 선반이 달려 있어. 신기하지?” 


“전기냉장고 생기기 전에는 목재에 양철판을 대서 만든 냉장고도 있었대.” 

냉장고 속 음식들이 저마다 떠들어대자, 참기름이 억울하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거봐, 나만 문제가 아니잖아.” 

“네가 몸에 기름을 많이 묻히고 들어오니까, 그렇지. 나도 혹시 어디 흐른 곳 없는지 봐야겠다.”

올리브오일로 만든 샐러드드레싱이 이리저리 둘러본다. 마요네즈는 냉장고 안에 있으면 기름이 분리될지 몰라 불안했는데 이참에 나갈까 하는 표정을 짓는다. 

위 칸의 계란들이 수군댄다. “우리도 옮겨주면 좋겠다. 냉장고 문 여닫을 때 흔들려서 노른자들이 다 풀어질 지경이야. 공기에 닿으면 신선도도 떨어지고. 내 껍데기에 붙은 살모넬라균이 냉장고 속으로 퍼질 수도 있다고!” 

“그렇지, 그래. 냉장고 문 자주 여닫는 건 질색이야.” 다들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