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제2979호
물에도 맛이 있을까? 이 질문은 고대부터 이어져 왔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0년경 물에는 아무런 맛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물맛’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제 공동 연구진이 쥐의 혀에서 물맛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로 이뤄진 미각수용체를 발견했다. 이로써 혀로 5가지 맛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던 사람의 미각에 여섯 번째 맛으로 물맛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맛 느끼는 신경세포가 ‘물맛’도 느낀다
포유류, 특히 사람의 혀는 최대 200가지의 다양한 맛을 구별할 수 있지만 순수하게 혀의 미각수용체만으로 인식하는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5가지 맛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혀로 특정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미각수용체가 해당 맛을 내는 특정 화학물질을 감지해 뇌로 신호를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생명공학과 오카 유키 교수팀은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병원 해부연구소와 공동으로 쥐의 혀에서 물이 닿을 때 감각신호를 생성하는 미각수용체를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5월 29일자에 발표했다. 즉 달거나 짠 음식을 먹을 때처럼 물을 마실 때도 쥐의 혀에서 감각신호가 활성화되면서 뇌로 전달된 것이다.
또한 연구진은 광(光)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물맛을 느끼는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생쥐가 물을 마시게 되는지도 시험했다. 그 결과 쥐는 신맛 미각수용체에서 신호가 발생하도록 만든 청색광에 노출될 때 마치 물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목이 마른 쥐 몇몇은 10분간 2000번이나 청색광 램프를 핥기도 했다. 신맛 미각수용체가 물맛도 감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번 실험에 앞서 비슷한 연구들이 있었다. 양서류와 곤충이 물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미국 듀크대 시드니 사이먼 교수팀은 포유류의 혀에서 물맛을 느끼게 하는 ‘아쿠아포린’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자처리 나이트 교수팀은 인간의 두뇌피질이 물을 마실 때 특이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인간이 맛을 느끼는 혀에서 신경세포가 물 분자와 어떻게 반응해 신호를 생성하고 이를 뇌로 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물맛은 산성도(pH) 변화로 감지할 가능성 높아
현재 물맛 외에도 다양한 맛이 여섯 번째 맛 후보로 제안되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립대 식품공학과 임주연 교수는 2016년 인간의 혀가 순수하게 ‘탄수화물(starchy)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전까지 밥, 빵 등에 포함된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 느껴지는 맛은 탄수화물이 당분으로 분해될 때 인식되는 단맛으로 생각했지만, 단맛 미각수용체를 마비시킨 상태에서도 탄수화물 맛을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미국 퍼듀대 영양학과 리차드 매티스 교수는 2015년 ‘지방 맛’이 여섯 번째 기본 맛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글: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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