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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소식

[과학향기] 최고의 경기력 만드는 과학적 컨디셔닝

 

 

<KISTI의 과학향기> 제3026호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 가을이다. 조용히 책을 읽기에 좋은 날씨지만 가을을 맞아 더욱 시끄럽고 치열해 지는 분야도 있다. 바로 스포츠다.
 
인기 스포츠인 야구는 한창 포스트시즌 중이고, 농구 역시 이제 막 긴 시즌이 시작됐다. 축구도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각종 평가전 등으로 날마다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가을이 지나면 곧 평창 동계올림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차피로를 잡아라
 
이렇게 숨가쁘게 진행되는 스포츠 잔치에 과학기술이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각종 첨단장비로 기록을 측정하고 경기력 향상을 위해 수억 짜리 고가 훈련기구를 도입하는 등 스포츠와 과학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최근에는 최고의 경기력을 위해 최상의 몸과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컨디셔닝(conditioning)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학적 컨디셔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과학적 컨디셔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시차 적응이다. 시차피로(jet lag)가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소화기능 장애, 두통, 피로감 등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며, 심지어 며칠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육과학연구원의 ‘시차극복을 위한 과학적 프로그램’ 보고서에서는 6시간 정도의 시차가 날 경우 반응시간의 44%, 순발력의 13.7%, 근력의 10.3% 정도가 저하된다고 보고됐다. 이에 따르면 8시간의 시차가 발생했을 때 인체 리듬이 재조정되기 까지는 9일이 걸린다.

 

 

사진1. 컨디셔닝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시차회복이다. 운동으로 다져진 선수들의 몸이라도 시차피로로 인한 생체리듬 손상은 피할 수 없다. 출처: Shutterstock 
 
때문에 시차 적응은 가장 큰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체육과학원 송홍선 박사 연구팀이 작성한 ‘2012 런던올림픽을 위한 컨디셔닝 대처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시차피로로 인해 망가진 생체리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음식, 신체활동 등 다양한 외부요인을 동원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이중 특히 효과가 좋은 것이 멜라토닌 복용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에 멜라토닌 3~5mg 가량을 섭취하면 수면의 질이 높아지고 다음날 주의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빛도 중요한 외부요인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2500럭스(lux) 정도 조도를 가진 방에 드나들었다. 밝은 빛을 통해 의도적으로 수면시간을 늦춰 생체리듬을 맞춘 것이다.
 
스트레스 파악에는 침이 최고?
 
컨디셔닝에는 심리적 요인도 중요하다.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선수에게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너무도 명확한 일. 이에 타액을 생물학적 표지자(Biomarker)로 이용해 선수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파악하는 방법이 각광받고 있다. 타액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반응해 증가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한편 스트레스를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망가진 컨디션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다. 여기서는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바이오피드백은 말 그대로 기계나 도구를 통해 생체 기능들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호흡, 심박수, 근육의 수축 등 주로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신체반응을 자각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사진2. 뇌파를 조절해 컨디션을 회복하는 뉴로피드백이 각광을 받고 있다. 출처: Shutterstock
 
뇌파 조절해 컨디션 회복
 
최근 트렌드는 뇌의 전기적 활동(EEG)을 이용하는 뉴로피드백(Neurofeedback)이다. 기계 장치를 이용해 자신의 뇌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조절하게 함으로써 원하는 방향으로 뇌파를 활성화시키는 훈련을 말한다.
 
선수들의 두뇌에서 발생한 전기적 신호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돼 스크린에 나타나기 때문에 평소 조절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뇌파를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반복적으로 자신의 뇌파를 특정한 방향으로 조절하는 훈련을 통해 신체나 정신을 긍정적인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골프나 양궁, 사격 등 심리적 요인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치는 종목에서 효과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28년 만에 전종목을 석권한 대한민국 양궁선수들의 비결도 뉴로피드백 훈련이었다.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것은 시합의 당사자인 선수에게도, 보는 우리에게도 모두 즐겁고 뜻 깊은 일이다. 연이어 진행될 스포츠 축제에 과학적 컨디셔닝을 바탕으로 한 수준 높은 경기가 가득하기를 바라본다.
 
글: 김청한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