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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소식

[동아 사이언스] “엄마는 네안데르탈인, 아빠는 데니소바인” 게놈 연구 결과 첫 확인

 

빙하기가 이어지던 어느 추운 날, 러시아 시베리아의 알타이산맥에 위치한 데니소바 동굴에서 13세의 어린 소녀가 세상을 떠났다. 5만 년 뒤, 손가락만 한 뼛조각만 남은 이 소녀의 주검을 발굴해 연구한 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DNA를 추출해 해독한 결과, 부모가 서로 다른 종의 인류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약 4만 년 전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시베리아 인근까지 살았던 친척 인류 네안데르탈인이었고, 아버지는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 대륙 일부에 살았던 또 다른 친척 인류 ‘데니소바인’이었다.

 

데니소바 동굴에서 내려다 본 풍경. 5만 년 전은 빙하기로 이보다 황량하고 추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 사진 제공 막스플랑크연구소
데니소바 동굴에서 내려다 본 풍경. 5만 년 전은 빙하기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이 내려다 본 풍경은 이보다 황량하고 추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 사진 제공 막스플랑크연구소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팀은 2012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된 인류 화석의 게놈(유전체·생명체가 지닌 DNA 전체)을 해독하는 데 성공해 그 결과를 22일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이 기술은 친자나 조상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DNA 검사를 극도로 정밀하게 개선한 것으로, 수만 년 전 화석의 조상까지 정확히 밝힐 수 있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 소녀의 DNA에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거의 같은 비율로 섞여 있었다”며 “이는 이 유전자들이 소녀의 바로 윗세대, 즉 부모로부터 각각 왔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서로 다른 두 종의 부모가 남긴 자녀의 게놈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 러시아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뼛조각들 -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2012년 러시아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뼛조각들 -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연구팀은 게놈 속 유전자를 통해 두 부모의 과거 이력도 함께 연구했다. 그 결과 어머니는 약 12만 년 전 먼 서유럽에서 온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먼 조상 중에도 네안데르탈인이 최소 한 명 이상 있는 ‘혼혈’ 데니소바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소녀의 족보에는 ‘종을 초월한 사랑’이 최소 두 번 있었던 것이다. 페보 소장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생각보다 자주 자손을 남겼다”며 “당시 인류 사이의 이종교배가 보편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약 4만 년 전 유라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인류들. 파란색은 네안데르탈인, 빨간색은 데니소바인, 노란색은 현생인류다. 이번에 이종교배가 확인된 개체는 빨강과 파랑이 반씩 섞여 있다. 유전자에 일부 다른 종의 유전자가 포함된 경우는 점이 찍혀 있다. - 사진 제공 네이처
약 4만 년 전 유라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인류들. 파란색은 네안데르탈인, 빨간색은 데니소바인, 노란색은 현생인류다. 이번에 이종교배가 확인된 개체는 빨강과 파랑이 반씩 섞여 있다. 유전자에 일부 다른 종의 유전자가 포함된 경우는 점이 찍혀 있다. - 사진 제공 네이처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