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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소식

[KISTI 과학향기] 아빠의 부성도 모성에 뒤지지 않는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139호

 

 

갓 나온 아기 오랑우탄에게 엄마 오랑우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엄마는 수년간이나 새끼에게 모유를 먹이고 포식자를 막고 잠자리를 살펴준다. 그렇다면 아빠 오랑우탄은? 대개 아빠는 자기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북극곰도 그렇다. 엄마 북극곰은 힘 없고 경험 없는 새끼를 잘 키우려 애쓰지만 아빠 북극곰은 도와주지 않는다. 심지어 아빠 북극곰이 새끼를 잡아 먹는다는 보고도 있다.

이처럼 동물 세계에서 암컷과 수컷이 양육에 바치는 노력은 다르다. 암컷에게는 본능적으로 자기 새끼를 돌보려는 마음이 있다. 인간은 어떨까? 별 다를 것 없다. 물론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인간 남성은 양육에 더 많이 참여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이렇게 생각한다. ‘엄마에게는 날 때부터 자식을 보살피는 본능인 ‘모성’이 있다. 반면 ‘부성’은 드물다. 게다가 부성은 본능적이지 않아서 제 아이를 돌보겠다는 이성적 선택이 아빠를 비로소 아빠로 만든다.’ 이런 신화는 인간도 원래 엄마가 더 양육에 힘 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다면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가 없었을 것이다.  

아빠보다 엄마가 더 아이의 울음에 민감하다는 연구는 이 점을 입증한다. 실험에서 부모는 울음소리만 듣고 자기 아이와 다른 아이를 가려야 했다. 그러자 엄마는 80% 이상이 자기 아이를 알아봤다. 아빠는 거의 절반인 45%만이 성공했다.

 

  

사진 1. 아기를 업은 엄마 오랑우탄. 엄마는 극진히 자기 새끼를 돌보지만 오랑우탄 수컷은 양육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유인원 중에서 수컷이 양육에 참여하는 경우는 인간 말고는 아주 드물다(출처: shutterstock).

‘엄마 vs. 아빠’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최근 연구는 이런 고정관념을 반박한다. 아빠도 엄마 만큼이나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프랑스 생 테티엔 대학의 에릭 구스타프슨 연구팀은 콩고와 프랑스에 사는 6개월 이하 신생아 29명과 부모를 대상으로 아이 알아보기 연구를 했다. 연구팀은 아이들이 목욕할 때 낸 울음소리를 녹음해 다른 아이들의 울음과 함께 부모들에게 들려줬다. 보통 사람이 듣기에 울음소리는 모두 비슷했다.

부모들은 울음소리만으로도 우연의 일치일 확률보다 높게 누가 자기 아이인지 잘 구별했다. 각 부모들은 서로 다른 30개의 울음소리(24개는 다른 아이 8명, 6개는 자기 아이)를 들었는데, 평균적으로 5.4개를 자신의 아이로 맞게 가렸고, 4.1개의 다른 아이 울음을 자기 아이로 오인했다.

재미있는 결과는 데이터를 엄마와 아빠로 나눴을 때 나타났다. 울음소리로 자신의 아이를 찾아내는 능력은 성별에 상관없었다. 오히려 부모가 아이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느냐가 좌우했다.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아이와 시간을 보낸 14명의 아빠 중 13명이 98%의 정답률로 자기 아이를 맞췄다. 여기 끼지 못한 아빠 1명도 정답률이 90%나 됐다. 이와 동등하게 시간을 보낸 29명의 엄마 즉, 엄마 전부는 역시나 98%의 정답률을 보였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4시간이 채 되지 않는 나머지 아빠 13명의 정답률은 75% 수준이었다.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낸 아빠는 울음소리로 자기 아이를 잘 알아냈다. 이는 대개 엄마가 아빠보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다는, 즉 모성이 부성보다 강하다는 기존 연구를 뒤집는 결과이다.

모성은 온전히 자연이 준 선물이 아니다. 엄마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에서 아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으로 변한다. 부성은 온전히 의식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아빠도 엄마처럼 아이와 함께 오랜 시간 교감하면 울음소리만 듣고도 직관적으로 내 아이인지 아닌지 잘 가려낸다. 아빠에게도 모성과 다름없는 부성이 있다.

남성은 자신과 닮은 아이를 좋아한다

사실 심리학자들은 남성에게 부성을 북돋는 선천적 기질이 있다는 증거까지 찾아냈다.

미국 뉴욕주립대 고든 겔럽 주니어 연구팀은 자신과 닮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남녀 차이가 있는지 확인했다. 연구팀은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아이와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아이 사진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어느 아이가 자기 얼굴과 합성한 아이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지, 어떤 아이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지, 돈을 쓰고 싶은지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과 닮은 아이를 고르는 경향이 더 높았다. 남성 참여자들은 왜 그 아이를 택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그냥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이 아이를 고를 때는 닮음 여부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여성 참여자들은 선택하는 시간도 길었고 선택하기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사진 2. 아버지는 자식이 자기를 닮았는지에 신경 쓴다. 소설가 김동인은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에서 인간 남성의 이런 심리를 날카롭게 묘사했다. (출처: shutterstock)
 
왜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닮은 아이에게 호감을 느낄까? 진화심리학은 이를 불확실성으로 설명한다. 여성은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자신이 배 아파 낳았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아빠는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은 남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착각하고 기를 수 있다. 인간 남성에게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엉뚱한 아이에게 소중한 자원을 쏟지 않으려고 자신과 닮은 아이를 알아차리는 마음이 진화했다.

“오직 여성만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다.”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여성이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 오류이다. 양육에서 고정된 본성 같은 것은 없다. 아이와 애정을 나누면 나눌수록 아빠는 변한다. 그때 아빠들의 부성은 모성에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

미국의 엄마들은 평균 14시간을 양육에 쓰는 반면 아빠들은 평균 7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낸다고 한다. 아빠들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사회, 정책, 개인적으로 노력하자.
 
글: 백소정 서울대학교 인지과학 협동과정/일러스트: 유진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