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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소식

[과학향기] 유전자도 성형이 된다고요?

<KISTI의 과학향기> 제2850호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에는 단순히 오래 살길 바랐다면, 이제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길 소망한다. 사람들은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하지만 이러한 ‘노오력’이 후천적 질병을 예방하거나 발병을 늦출 수는 있어도 무병장수의 꿈을 이뤄주지는 않는다. 유전에 의한 선천적 질병은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발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전병은 나의 ‘노오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타고난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그 운명을 거스르고자 과학의 힘을 빌리고 있다. 유전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혹은 나의 질병을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유전자를 성형하기 시작했다.
 
■ 아이는 한 명, 부모는 세 명
 
2016년 9월 멕시코에서 부모가 세 명인 아이가 탄생했다. 정확히 아빠는 한 명, 엄마는 두 명인 아이다. 이 아이는 세계 최초의 ‘세 부모 아이’로, 세 명의 DNA를 결합하는 ‘체외수정’ 시술을 통해 태어났다. 세 부모 아이 시술은 유전병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한 부모의 노력 중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아이의 부모인 요르단출신의 하산 부부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인 이브티삼 샤반은 유전적 중추신경계 질환인 ‘리 증후군’ 인자를 갖고 있었다. 리 증후군은 난자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에 들어 있는 유전물질에 결함이 있고, 이 결함은 자녀에게 전달되는 유전병이다. 이로 인해 지난 10년간 아이를 4번 유산했고, 어렵게 얻은 2명의 아이도 6세, 8개월 만에 각각 사망했다. 결국 이 부부는 세 부모 아이 시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세 부모 아이 시술의 핵심은 미토콘드리아에 결함이 없는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여기에 엄마 난자의 핵을 이식하는 것이다. 그럼 난자는 엄마의 유전정보를 갖고 있으면서 유전적인 결함은 없는 건강한 상태가 된다. 여기에 다시 아빠의 정자를 수정해 친모의 자궁에 착상시킨다. 이렇게 탄생된 아기 하산은 엄마를 통해 전달되는 유전병 인자를 갖고 있지 않다. 이번 시술을 진행한 미국 새희망출산센터 연구팀은 아기 하산이 앞으로 엄마가 갖고 있던 유전적 질병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2016년 12월, 이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세 부모 아기 시술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함께 영국 보건당국은 세계 최초로 ‘세 부모 아기’ 시술을 승인했다. 여세를 몰아 앞으로 이 시술을 이용할 난치병 환자가 많을지, 세계 각국의 규제가 바뀔지 지켜볼 만하다.
 
■ 유전병 예방, 오래전부터 논의돼
 
세 부모 아이 시술이 시행되기 훨씬 이전부터 유전병을 이겨내려는 또는 유전병을 자식 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는 노력은 지속돼 왔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분석 결과 유방암과 난소암을 발병시키는 특정 유전자를 갖고 있었고, 그 결과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유방과 난소를 아예 절제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방법은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PGD)이다. PGD는 체외수정 중 하나로,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키고 3~5일이 지난 뒤 유전자를 분석한다. 이후 유전병 DNA를 갖고 있지 않는 배아를 선택적으로 골라 엄마의 자궁에 착상시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120cm 엄지공주'로 알려진 윤선아씨는 골형성 부전증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으로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배아 단계에서 유전물질을 자르거나 교체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도 있다. 이 기술은 유전자 변형 곡물(GMO)이나 유전자 변형 동물(GM동물)과 같은 원리다. 배아 세포에서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DNA를 인위적으로 잘라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건강한 DNA를 넣는다. 그럼 아기는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갖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
 
■ 윤리 문제는 아직!
 
이런 방법들을 이용하면 유전성 난치병을 앓고 있는 부모도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의학계는 세 부모 아기 시술이나 PGD는 매우 좋은 기술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유전자를 성형하는 기술들은 윤리 문제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아기가 마트에서 사는 인형처럼 상품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전자 검사로 예측할 수 있는 건 질병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기의 성별이나 머리카락 색, 피부 색 등을 선택해서 낳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한 연구팀이 미국에 있는 출산클리닉 415곳을 조사한 결과, 시술자의 50%가 치료 목적이 아닌 이유로 PGD 시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적으로 성별 선택 임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술 과정에서 생기는 실수나 오류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현재 세 부모 아이 시술 과정에서 핵을 바꾸는 기술이 아직 정교하지 않다. 핵 이식 도중 1~2% 비율로 유전병을 일으키는 미토콘드리아가 섞여 들어오기 한다. 낮은 비율이지만 이 미토콘드리아가 분열을 거듭해 아기의 몸속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시술을 하더라도 유전병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배아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수많은 배아들을 어떻게 보는 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과학계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후 14일 이후부터를 생명체로 보지만, 일부에선 수정이 된 순간부터를 생명체라고 보기도 한다. 이럴 경우 유전적 결함이 발견된 배아들을 버리는 것은 생명체를 버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세 부모 아기 시술을 비롯한 유전자 성형 기술들의 윤리 문제는 한동안 사람들의 도마 위에 오르내릴 것으로 보인다.
 
과연 유전병을 이겨내기 위한 유전자 성형이 건강한 100세 시대를 위한 희망의 기술이 될까? 아니면 금단의 영역을 침범하는 위험한 기술이 될까? 앞으로 펼쳐질 유전자 성형시대의 모습이 어떨지 더욱 궁금해진다.
 
글 :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